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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090816-22제주도

제주도 자전거 여행기 [1편]

 제주도!

학창시절 수학여행때 그리고 어떤여행(?)을 통해 학교에서 두번 다녀온적이 있다.

그러나 관광버스만 들락날락, 제대로 본게 없는 것 같다. 기억나는 거라곤 한라산에 오르다가 폭설로 인해 입산통제가 되어서 중간에 내려온거, 어떤 민속마을에 가서 가짜 영지꿀을 샀던게 전부다. 제주도에 다녀온 사람들이 제주도 칭찬을 많이 하기도 하고 나도 제대로 제주도를 제대로 본적이 없는 것 같아서 제주도가 가보고 싶어졌다. 또 외국으로 나가자니 헝그리한 나의 인생을 더욱더 궁핍하게 만들것 같아서 차마 해외로 뜨지는 못했다.

그래서 2009년 하계휴가를 맞이하여 해외를 갈까 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를 한바퀴 도는것도 의미있는것 같아서 내 친구 석원이와 함께 제주도 라이딩을 계획했다. 우선 집에있는 자전거는 나보다 상전이므로 비행기에 태울수 없어서 자전거를 구입하고... 음... 등등등 오늘부터 여행기를 써볼까 한다.

 

1. 여행준비

이것이 바로 내가 새로 구입한 핑크색 메리다 로미오.

순정부품은 프레임과 핸들바, 휠셋정도? 그 외에는 거의 대부분 교체됐다. -_- 도...돈이 많이 들었다. 당초의 컨셉은 잃어버려도 부담없는 저렴한 여행용 자전거를 꾸미는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얘도 역시 내 방 한칸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순정 메리다 로미오

한달넘는 돈지랄 끝에 이렇게 변했다! XTR부터 DEORE, TIAGRA 부품이 총망라된 나름고급 미니벨로!

 

 자전거가 완벽하게 세팅되고 이제는 짐을 싸자. 이번여행은 좀 제대로된 자전거 여행을 가기위해 저 앞바퀴 위에 달린 자전거용 페니어를 사서 달았다. 없는 살림에 지출이 많다. 도이터의 B-49페니어, 원래 메뉴얼에는 간단한 여행이나 통근용이라고 떡하니 써있지만 헝그리한 나의 인생은 메뉴얼쯤 가뿐히 무시하고 6박7일의 길다면 긴 여행용으로 용도변경을 시도하게 하였다. 페니어~ 니들이 고생이 많다. 보통 10만원이 넘는 고가의 패니어들이 많았기에 3만5천원이라는 가격을 보고 그렇게 기대는 안했다. 그런데 실제로 물건을 보니 정말 마음에 들었다. 용량도 왠만한 책가방 만큼 들어간다. 양쪽에 두개를 달았으니 곱하기 2하시면 되겠다. 이제 실제 들어간 물건 사진 보시겠다.

 

도이터 B-49 페니어

 

실제로 위와같은 짐을 쌌다. 간단하게 써보자면 자전거유니폼 상하 세벌, 일반옷 상하 두벌, 신발한켤레, 수영복, 윈드자켓, 속옷 및 양말 5개씩, 세면도구, 자전거백수건 등 상당히 많은 짐을 쌌다. 그런데!! 놀랍게도 페니어는 여유가 있었다. 더 쌀수 있다. 여름옷뿐이라서 짐이 별로 없던 탓도 있지만 그래도 상당히 많은 양의 짐을 넣을 수 있었다. 용량뿐아니라 지퍼라든지 제품의 마감이라든지 제일 중요한 자전거에 부착하는 고리가 아주 훌륭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가장 잘 산 물건이 바로 페니어다. 칭찬~ 또 칭찬~ 여름에 떠나는 장거리 여행이라면 이 페니어 두개로 끝!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들고 다니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페니어라는게 자전거에 부착해서 다니는거지만 가끔 자전거를 세워두고 어딜 다녀올때 상당히 불안하기 때문에 들고 갈때가 있었다. 손잡이가 달려있긴 하지만 양손에 두개를 들고 다니기가 여간 귀찮지 않았다. 도이터의 10만원대 제품들은 백팩처럼 멜수있게 되있다던데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그 제품도 하나 사서 써보고 싶다. 짐을 다 쌌으니 이제 제주도로 떠나자.

 

2. 떠나는날[2009, 08, 16]

  김포공항까지 지하철을 이용해 이동했다. 빨간헬멧에 빨간장갑, 검은색 고글을 쓰고 핑크색 바이크에 이따만한 짐을 달아놓은 나는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새로 지하철에 올라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아~ 부끄부끄. 김포공항에 도착해 바이크백에 자전거를 분해해서 넣고 짐부치고 끝! 하지만 사고는 항상 있는법.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비행기를 탈려니 몇만원이라도 아껴보고자 진에어를 이용했다. 원래는 공항 포장서비스를 이용해서 자전거를 포장하려고 했지만 돈이 너무 아까워서 바이크백에 넣어가기로 했다.(참고로 자전거포장 서비스가 2만5천원으로 올랐단다. 무쟈게 비싸다.) 진에어로 가서 자전거를 가지고 어슬렁 거리니 진에어 관계자분께서 자전거를 포장해야 된다고 하길래 바이크백을 보여줬다. 잠시 생각 해보더니 이정도면 괜찮을거에요. 해서 짐을 부쳤다. 그런데 제주공항에 도착해보니 QR레버가 파손되어 있었다. ㅠ 아~ 괜찮다더니.. 분루를 삼키고 그냥 조립해 탔다. 별로 중요한 부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좀 나빴다. 제주공항에 도착해 나의 군대 동기인 승환이 집으로 향했다. 제주도의 아스팔트를 내 자전거로 달리는 기분, 정말 좋았다. 제주도의 신성한 공기~ 파란 하늘과 이국적인 나무들이 왠지 기분 좋아졌다. 그러나.... 제주도의 바람은 여지 없이 내 다리를 잡아 끌었다. 아~ 여기가 제주도 맞구나. ㅠ

 

김포공항에서 짐부치고 나서, 왤케 없어보이냐.

비행기값이 74,400원이라고 친절하게 뒤에 보인다. ㅋㅋㅋ 저렴한 내인생

 제주 공항 도착 후 자전거 재 조립, 석원이는 바이크백을 접고 있다.

 

 승환이 집으로 가는길은 힘들었다. 제주공항에서 삼양동까지 가야하는데 길도 모르고 제주도의 바람이 너무 쎄서 금방 힘이 빠지고 말았다. 게다가 제주시내는 언덕도 많았다. 앞으로 6일의 여행이 약간 걱정되기도 했다. 제주관광청에서 무료로 받은 지도를 보면서 조금씩 가고 있다가 중간에 할아버지께 길을 여쭤봤다. 그냥 쭈~~욱 가면 된단다. 그런데 내가 지도를 보기엔 아무래도 우회전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자신있게 우회전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 말을 들을걸 하고 후회하는데는 10분도 안걸렸다. 우리는 길을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 말씀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 먹는다고 했다. 말 듣자. -_- 길을 헤매고 있는 우리를 위해 승환이가 아벤떼 HD를 몰고 마중을 나왔다. ㅋㅋㅋ 착한자식. 우리는 승환이의 안내를 받으며 승환이 집으로 향했다. 금새 도착해 승환이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쉬었다. 그리고 5년만에 군대 선임인 강동균해병님도 만나서 회도 얻어먹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5년이 흘렀지만 군대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우리 인생에 절대 잊혀지지 않을 2년... 그렇게 제주도에서 첫날밤이 흘러갔다.

 

3. 둘째날[2009, 08, 17]

  첫날 승환이 집에서 하루 묵은후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승환이 집을 나섰다. 승환이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사진 한장 찍고 오는건데 깜빡 잊어버렸다. 너무 달리는데 치중하다보니 사진을 많이 못찍은게 참 아쉽다. 다음엔 사진좀 많이 찍어야겠다. 뭐 핑계라면 6년된 나의 쿨픽스 4100이 켜고 끄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리다 보니.. -_- 저.. 저질이다.

 다시 제주공항쪽으로 달려서 제주항에서 사진 한 장을 찍고 용두암으로 달렸다. 10년도 더 전에 용두암에 한 번 와본것 같은 어렴풋한 기억이 났다. 그때 태풍에 용두암 부서졌다고 누가 나한테 장난을 쳤었던 생각도 났다. 용두암으로 가는길에 어떤 공원(?)에서 물도 채우고 사진도 한장 찍고.. ㅋㅋ

 제주항에서 찍은 사진

같이간 석원이

제주도의 상징인 돌하르방을 찾아서 사진도 한장 찍고

 

 역시 제주도라서 그런지 돌도 많고 시내에 계곡역시 평소 볼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시내쪽에 이런 계곡이 있다는게 정말 신기했다.

용두암으로 가는길에 본 계곡, 시내에 이런게 있다니 놀랍다.

 제주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약 10분쯤 달리고 나니 용두암이 나왔다. 제주항에서 정말 가까운곳에 있었다.

미래지향적으로 먼 바다를 바라보며 용두암을 배경으로 한컷 더!

 

 용두암을 뒤로하고 다시 해안도로를 달려간다. 이때쯤 핸드폰을 살펴보니 승환이에게 전화가 세통이나 와 있다. 그래서 무슨일인가 하고 승환이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지도를 승환이 집에다 놓고 온게 아닌가. ㅠ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우리, 그냥 지도 없이 무작정 달리기로 했다. 달려달려~

 

 지도없이 달린다.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일을 어찌 할꼬...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제주도에서만 볼수 있는 해안의 기암괴석을 감상 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볼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해안가의 풍경이 경이롭다. 지금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저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수천만년전에는 엄청 뜨겁게 끓고 있었다는걸 생각하니 재미있기도 했다. 바위의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니 진짜 부글부글 끓었던것 같다.

울퉁불퉁 뜨거운 바위

 

뜨거운 용암이 바닷물에 닿아서 생긴 독특한 모양의 바위 아주 멋있긴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쓰레기가 많다. 우리나라 제일의 관광도시인 제주도라서 그런지 몰라도 좀 실망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이지만 인간이 버려놓은 쓰레기 때문에 그 감동이 반감되는것 같다. 좀더 철저한 관리와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것 같다.

 중간에 쉬면서 찍은 사진

 

용두암을 보고 계속 달려서 이호해수욕장까지 갔다. 둘다 단련이 되어있어서  속력도 꽤 났고 별로 어려운점 없이 거리를 계속 누적해 나갔다. 용두암에서 이호해수욕장으로 가는 방향은 탄력을 잘 이용하면 속도가 잘나는 편이다. 얼마가지 않아 이호해수욕장이 나왔다. 제주시내에서 약 7km밖에 떨어져있지 않아서 금방 도착 할수 있었다. 제주도 해안도로를 일주하면서 만난 첫 해수욕장이라서 그런지 뭔가 뿌듯한 느낌과 함께 쉬어 가고 싶은 욕망이 샘솟았다. 자전거를 잠시 한쪽에 세우고 신발도 벗고 바다속에 발을 담갔다. 시원하다. ^^ 바다빛은 그야 말로 에메랄드빛이었다. 가까히에서 보면 너무 투명하고 맑아서 아래에 있는 모래들이 다 보일 정도이다. 물속에 들어가보니 물속에 돌을 쌓아 담처럼 만들어 놓은곳이 있고 그 안에는 작은 우물같은게 물에 잠겨 있었다. 말로만 듣던 용천수 인가 하고 물맛을 보니 아주 약간 짜긴 하지만 담을 경계로 짠맛이 많이 달랐다. 용천수가 맞나보다. 처음엔 이처럼 작은 용천수를 보고도 신기했는데 나중에 곽지 해수욕장에 갔더니 아주 그냥 물이 콸콸콸~

 

 반시계방향으로 시작한 제주도 해안도로일주에서 처음으로 만난 이호해수욕장

아주 약간 짜긴 했지만 확실히 바닷물은 아니었다. 이게 용천수인가보다.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 다시 떠나자. 제주해녀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

 

여기서 잠깐! 사진에서 보다시피 제주도 라이딩 내내 복면과 팔토시를 꽁꽁 감싸고 탔다. 우선 썬크림을 바르고 버프를 쓰고 고글을 끼고 장갑과 팔토시를 하고 최대한 피부를 노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장갑과 팔토시의 사이라던가 종아리같이 노출된 부분은 정말 까맣게 타버렸다. 나중에 칠부가 아닌 반바지를 입고 탔을땐 허벅지도 빨갛게 달아 올랐다.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제주도의 태양은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매우 강했다. 팔토시와 버프는 필수다. 그렇지 않아도 까만데 더 까매지면 큰일난다. 이호해수욕장을 출발해서 다시 서쪽으로 서쪽으로~

 

 제주도의 이국적인 나무들 앞에서 한컷, 마치 열대림에 온것 같은 착각이 든다.

 곽지해수욕장 바로 옆 제주도의 투명한 바다, 하늘빛과는 다르게 은근한 초록빛이 너무 아름답다.

 곽지해수욕장 도착, 과물 노천탕이다.

 노천탕 안에는 이렇게 물이 콸콸콸 나온다. 정말 뼈가 시리도록 차갑다. 10초도 못 견딜 것 같은 차가움.

 과물노천탕에서 차가운물 맞고 있는 석원군

 

이호해수욕장에서 곽지해수욕장까지는 논스톱으로 달렸다. 길이 좋은 편이라서 매끄럽게 페달을 돌렸다. 언덕과 내리막을 번갈아가며 막힘없이 달렸다.  곽지해수욕장 근처에 도착했을때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평소 보던 바다와는 다르게 낮은 모래사장이 아주 크게 펼쳐져있고 그 위에 초록빛 물이 꽉 차 있었다. 지금 와서 보니 곽지 해수욕장 사진을 제대로 찍어 놓은게 없는게 아쉽다. 정말 아름다운 바다였다. 나중에 제주도에 가게되면 꼭 다시 찾을 1순위 해수욕장. 사람도 별로 없고 옆에는 덤으로 과물노천탕까지.. 정말 다시 가보고 싶다. 나에게 제주 제일의 해수욕장을 추천하라고 하면 곽지해수욕장을 추천하고 싶다. 우선 이때까지는.. ^^ 나중에 여행 막바지에 들렀던 김녕해수욕장과 월정해수욕장도 매우 좋다는 걸 알기까진..

 

 꿈에 다시 나올것 같은 곽지 해수욕장, 사진이 이것밖에 없다. -_- 정말 아름다운 바다였는데..

 곽지해수욕장 옆 해변, 곽지해수욕장 사진이 없어서 이거라도 대신

 탱크보이 하나 먹고

 석원군은 폴라포를 먹고 이제 다시 떠난다.

 

아직 첫날이라서 힘이 남는다. 뜨거운 날씨와 훈풍때문에 좀 힘들긴 했지만 나 다리를 잡아 끌 정도는 아니었다. 곽지해수욕장에서 탱크보이 하나를 먹고 다시 떠날 채비를 한다. 오늘의 목표는 차귀도였다. 첫날이라서 무리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직 힘이 남았기에 계속 거리를 쌓아간다. 나의 자전거도 별 탈 없이 나를 서포트 해주었다.

 

※ 여기서 잠깐 여행 곁다리로, 페니어와 프론트렉에 관한 이야기다.

 먼지나는 가난한 월급쟁이 월급봉투로 헝그리한 라이딩을 계획하다보니 여러가지 헝그리한 곳이 보인다. 바로 페니어도 그중 하나. 앞에 말했다시피 간단한 여행과 통근용으로 만들어진 3만5천원짜리 페니어를 가지고 여행을 시작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아니 매우 훌륭했으나 프론트랙이 날 가만두지 않았다. 보통은 10만원 정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헝그리한 나의 인생은 무한 검색신공을 펼치게 하여 1만7천원짜리 프론트랙을 발견하게 만든다. 그러나 문제는 프론트랙의 길이가 약간 짧아서 나의 페니어가 완벽하게 걸쳐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저렴한 가격에 우선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자는 마음으로 주문을 하고 만다. 물건을 받아 장착했다. 역시 좀 짧다. 페니어를 약간 휘어서 장착하는데는 별 무리가 없는 듯 하다.

그러나 막상 제주도에서 라이딩을 하다 보니 좀 심한 턱을 지나자 제대로 장착되지 못한 페니어 앞고리가 빠져 버린다. 꽤 위험한 순간을 만날뻔 했다. 그래서 이마트에서 케이블 정리용 찍찍이를 사서 페니어 고리과 프론트렉을 고정해 주었다. 아주 훌륭하다. 그래도 나중에 더 긴 여행을 떠날땐 이 프론트랙을 개량하던지 해야 할 것 같다. 아래쪽에 페니어를 고정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서 앞바퀴와의 간섭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 페니어 위치를 조절하여 문제없이 다고 다니긴 했지만 첫 여행이라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어쨋든 도이터 B-49페니어와 옥션표 프론트랙은아주 괜찮은 조합이다.

 

 아직도 내 눈에 담겨있는 것만 같은 곽지해수욕장을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인 협재해수욕장으로 페달을 돌렸다. 사실 지금까지 여행기를 쓴 내용은 중간중간 어떤 목적지를 가지고 달렸지만 첫날 지도를 승환이네 집에 놓고오는 바람에 협재해수욕장 근처 관광안내소에서 새 지도를 얻기까진 목적지도 없이 그저 달리기만 했다. 치명적인 실수가 아닐 수 없다. 지도가 없는 여행을 짧게나마 경험해본바로는 진짜 답답하다는 느낌이다. 목적지 없는 여행을 하는 느낌,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느낌은 외딴곳에 뚝 하고 떨어져버린 느낌이었다.  

 결국 앞에 뭐가 나올지도 모른채 달렸을때 협재해수욕장이 나왔다.  그곳에서 지도를 얻어 우리의 위치를 확인했을때에는 우리가 이미 첫날 생각했던 거리를 다 달린 상태였다는 것도 알았다. 뒤에서 누가 쫒아오는 것도 아닌데 시간에 쫒기는 평소 생활에 물든것 처럼 여행을 와서도 빨리빨리를 실행해 버렸다. 협재해수욕장은 사람이 정말 많았다. 피서시즌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사람들은 아직 파란물속에 물을 담그고 저마다의 일상탈출을 실행하고 있었다. 협재해수욕장에서 쉬어 갈까 생각 했지만 사람도 많고 자전거를 세울곳도 마땅치 않아 우선 한림공원에 들르기로 했다.

 석원이와 함께 여행계획을 세우면서 해안도로를 돌며 근처에 있는 몇몇 관광지를 둘러보기로 했었는데 한림공원은 그 계획에 없었다. 단지 우리가 너무 빨리 달렸다는 사실 때문에 들르게 된 곳이었다. 그러나 한림공원은 아름다웠다. 우연히 해변을 걷다 아름다운 진주를 주운것 처럼 한림공원에 들른건 행운이었다.

 

 협재해수욕장 근처 편의점에서 단촐한 점심식사

 왕뚜껑과 카스레몬, 석원군은 쌀막걸리 -_-

 

 한림공원 간판

 

 한림공원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우고 페니어와 석원군의 짐은 보관함에 넣은 후 공원에 들어갔다.

 한림공원의 이국적인 나무들 사이에서 기념사진

 정말 큰 선인장

 석원군도 선인장을 만져 보고 있다.

 

 돈나무다!

 

 100년에 한번 꽃을 피우고 나서 죽는다는 용설난, 세기의 식물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저기 우뚝 솟은게 꽃이다.

 

한림공원에서는 아주 많은 것을 봤다. 식물원도 있고 분재도 있고 용암굴도 있고 신기한 모양의 돌들도 있다. 입장료는 7000원 이지만 돈이 아깝지 않았다. 완전히 다 돌아볼려면 2~3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한림공원은 국공립이 아니고 개인이 만든 공원이라고 한다. 한 개인이 이렇게 까지 방대한 공원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까 생각하니 숙연한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나는 무엇인가를 위해 이렇게 노력한적이 있는가...

 

 한림공원안에 있는 용암동굴로 들어간다.

 용암동굴 내부는 대략 이렇다. 저 속으로 뜨거운 용암이 흘렀다니 놀라운 뿐이다.

 

 한림공원에는 제주 민속마을도 있다. 제주 전통가옥들이 몇채 있었는데 현무암으로 된 절구가 있길래 들어 보려 했지만... -_-

 석원군도 도전! 결과는 상동

 이런 소품을 그냥 지나치는건 안될일이다. 물허벅을 한 번 들어본다.

 나도 돌하르방처럼 통통해져야 할텐데..ㅋㅋㅋ 그나저나 우리의 차림새는 어딜가나 이목집중이다.

 

한림공원을 둘러보는데 족히 두시간 넘게 걸린것 같다. 설렁설렁 지나쳤는데도 그정도 시간이 걸렸다. 한림공원 역시 나중에 꼭 다시 한 번 들르고 싶은 곳이다. 독특한 돌, 생소한 선인장, 아름다운 나무, 용암동굴까지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것 같다. 중간에 앉아서 쉬지도 않고 계속 둘러봐서 그런지 다리가 많이 피로하다. 그러나 오늘의 목적지인 차귀도에 도착하기 위해 한림공원에서 점점 멀어진다. 페달질이 수월하지가 않다. 오늘 하루 많은 거리를 달렸고 중간에 앉아서 쉬지 않고 계속 걸어다녀서 그런가보다. 허벅지가 묵직하게 내려간다. 하지만 아직 페달링을 멈춰야 할 정도는 아니다.

 

 해가 뉘엇뉘엇 할 무렵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

 바람이 센 제주도에서는 풍력발전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저거 한대면 우리집 전기세 안내도 될까?

 이곳이 우리의 첫 목적지인 차귀도다. 차귀도의 석양은 제주10경중 하나라고 식당 아저씨가 말씀해주셨다.

 차귀도를 바라보며 먹은 매운탕, 물고기가 뭐였는지 생각도 안난다. -_- 이날 수첩을 승환이 집에 놓고 오는 바람에..

 

 식사를 하고 있는데 석원이가 흉악한 소리를 한다. 오늘 중문관광단지까지 가자는 거다. 아직 체력이 100% 고갈된것은 아니었지만 평소 경험으로 보아 하루 100km 이상 라이딩은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말이 100km지 서울에서 천안가는 거리인데 제주도 거센 맞바람을 맞으면서 언덕을 위아래로 왔다갔다 하고 게다가 첫날은 내가 선두에 계속 서있었기 때문에 나의 체력상태는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원래는 선두를 번갈아 가면서 했어야 했는데 석원군과의 그룹라이딩 호흡이 썩 좋지 않았다. 자유로운 여행이고 또 차귀도가 목적지라고 생각 했기 때문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는데 덜컥 중문까지 가자니 겁이 난다. 그래도 간다. 차귀도에서 하룻밤을 보내자니 내일 아침에 여기서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부터 강행군이다.

 

 차귀도는 점점 하나의 점이 되어 간다. 우리는 중문으로 간다. 아직 해가 남아 있지만 동쪽 하늘은 이미 퍼렇게 멍들어 간다. 힘을내 페달을 누른다. 거리를 좀 단축하기 위해 1136도로를 타고 간다. 그런데 이게 계속 오르막이다. 감질맛 나는 내리막과  징그러운 오르막이 교대로 나온다. 저녁이 되어서 바람은 없었지만 이미 한 번 데미지를 입은 내 허벅지는 좀처럼 회복되질 않았다. 결국 난 그로기 상태가 되버렸다. 낮부터 계속 맞바람을 맞고 선두에 섰던게 화근이었다. 생쌀을 씹는 것 처럼 꾸역꾸역 페달을 눌렀다. 지금 부터는 정말 정신력으로 달리는거다. 여행준비를 하면서 기어비 조정을 해온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결국 나는 쉬어가길 자청한다. 끈진길 언덕이 계속 되고 끝났나 싶으면 약올리듯 또 언덕이 계속된다. 1136도로는 라이더들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은 도로다.

 야간라이딩을 시작했다. 해는 지구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결국 새까만 어둠이 아스팔트에 내려 앉았다. 나의 미약한 라이트는 어둠에 묻혀 버렸다. 결국 석원군의 P7라이트를 선두에선 내가 사용한다. 엄청 밝다. 눈이 한결 밝아진 느낌이다. 라이트가 비추는 곳까지 이를 악물고 내 몸속 저 끝까지 남아 있는 힘을 짜내 달린다. 나는 생각한다. 아, 라이트 새로 사야겠다. ㅋㅋㅋㅋ 결국 여행에서 복귀해 Q5라이트를 구입했다.

 저쪽에서 산하늘위로 주황색의 흩뿌려진 불빛들이 보인다. 도시의 불빛이 대기에 산란되어 하늘에 퍼지는게 맞다. 나는 속으로 기쁨이 환호성을 질렀다. 길고 지루한 언덕이 끝나고 이제 도착이구나. 마지막 흥에겨워 페달질이 쉬이 돌아간다. 짧고 가파른 내리막이 시작된다. 우리는 그간의 지루함을 보상하듯 최고속으로 달린다. 내려간다. 내려간다. 중문이다.

 10시 가까히가 되어 중문에 도착해 몇군데 민박에 전화를 해보았다. 외관부터 범상치 않은 곳들은 보통 원래는 10~16만원이라고 하지만 방이 있으니 6만원만 달라고 했다. 하지만 중문에 내려가 몇곳을 더 알아보니 4~5만원이면 깨끗한 방을 구할 수 있었다. 팬션급은 비성수기기준으로 6~8만원, 민박은 3~5만원 정도 인것 같다.

 민박집에 짐을 풀고 씻고 첫날을 정리한다. 석원이의 저질 속도계로 측정한 바로는 첫날 110km 이상을 탔다. 거의 제주도 반바퀴를 첫날 돌아버렸으니 이제 내일부터 뭘 할지 걱정이 된다. 중문에 볼게 많다니 한 번 기대는 해본다. 그러나 나는 지금 너무 피곤하다. 내일 부터는 선두를 교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든다. ㅠ 나도 살고 싶다.

 첫날 라이딩을 마친 석원군의 다리,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나는 이런 사태를 방지하고자 칠부를 입어서 다행이다.

빨간 스타킹을 신고 있는 것 같다. ㅋㅋㅋ

 

이날 차귀도에서 출발한 이후엔 사진이 없다. 너무 힘들어서 카메라를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좀 여유롭게 달렸어야 했는데 첫날 너무 무리해서 달렸다. 밤이라서 찍을 것도 없었지만 첫날 민박집이라던지 자전거라던지 이런걸 좀 찍어놔야 하는데 카메라는 생각도 못했다. 첫날이 이렇게 저물어간다. 2209년 8월 17일은 힘든 날이었다.

 

 

 

지출내역

8월16일

공항에서 점심식사 6,000원

메모리카드 13,500원

찍찍이 2,200원

 

8월17일

민박 45,000원

한림공원입장료 7,000원

지혜선물 4,000원

한림공원 음료수 4,000원

마트 2,190원

아이스크림 1,500원

마트에서점심 6,450원

총계: 91,840원

 

- 계 속 -